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할지 왕조 (문단 편집) === 할지 왕조의 쇠퇴와 멸망 === 알라둣딘이 사망한 직후 카푸르가 술탄에 올랐으나, 당연히 사람들은 그에게 지지를 보내지 않았고 카푸르는 몇 달도 되지 못해 술탄좌에서 쫒겨났다. 신하들은 카푸르 축출 이후 6세의 어린 [[시하브 웃 딘 오마르]]를 새 꼭두각시 술탄으로 옹립하고 그 형인 [[쿠트브 웃 딘 무바라크 샤]]를 섭정으로 세웠다. 그러나 쿠트브 웃딘 무바라크 샤는 반란을 일으켜 동생을 죽이고 술탄이 되었다. 무바라크는 유력 가문이었던 [[튀르크]]계 귀족인 말리크 가문의 가지 말리크를 [[펀자브]]의 [[지휘관|군사령관]]에 봉하는 등 환심을 사려 노력했지만 그 역시 4년 만에 [[쿠스라우 칸]] [[장군]]에게 암살당했다. 할지 왕조 최후의 술탄이었던 쿠스라우 칸은 반강제로 이슬람으로 개종한 힌두 출신의 노예였다. 그러나 뛰어난 무예로 술탄 알라웃딘의 눈에 들었고, 덕분에 알라웃딘의 원정군을 지휘하는 장군직에까지 오르는 등 인생역전에 성공한 인물이기도 했다. 1316년 알라웃딘이 사망하고 그 후임 술탄들이 연이어 궁정 쿠데타와 암살로 사망하자 쿠스라우 칸은 나라가 혼란스러운 틈을 보다가 술탄직마저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1320년 6월 술탄에 등극한 쿠스라우 칸은 알라웃딘의 직계 아들들을 포함한 할지 왕가의 일족들을 모조리 숙청하고 심지어 반이슬람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기존의 권력층들과 극한의 대립각을 세웠다. 당연히 무슬림 귀족들과 델리 술탄국의 관료들은 속으로 천한 힌두 노예 출신이라 혐오하던 쿠스라우 칸이 좋게 보일 리 없었고, 이에 반발한 신하들은 가지 말리크에게 새 술탄이 될 것을 요청했고, 가지 말리크는 델리로 진군해 찬탈자 쿠스라우 술탄을 죽이고 새로운 술탄으로 즉위했다. 1320년 가지 말리크는 술탄 즉위 후 이름을 [[기야스 웃 딘 투글루크]]로 개명하고 [[투글루크 왕조]]를 개창하여 할지 왕조는 [[멸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